깨달음은 늘 고귀한 것일까?
누군가의 상처 위에서 얻어진 통찰도, 여전히 빛날 수 있을까?
<싯다르타>의 한 구절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얻고자 했던 ‘성장’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자기만을 생각하는, 일면적인 자기 도취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절망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모든 생각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
그러니까 자살할 생각까지 품을 정도로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자비를 체험할 수 있기 위해서였으며, 다시 옴을 듣기 위해서였으며, 다시 올바로 잠을 자고 올바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였어.
내가 바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나의 내면에서 다시 아트만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였어.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였어.
-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
이 구절을 읽고, 마음이 멈칫했다.
현재의 실패나 절망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하는 말.
삶의 나락에 떨어진 순간조차도,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밑바닥에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그 고통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양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내가 힘들던 시절에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겼고,
그 뒤 나는 그 경험을 발판 삼아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내 깨달음이 얼마나 같잖게 보일까.
결국, 그것은 온전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얻은, 위선의 깨달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와 사랑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육체적 쾌락과 일종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삶을 경험하지만, 결국 싯다르타는 그녀를 떠난다.
카말라는 그 이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지만, 만약 그녀가 상처받고 분노했더라면 어땠을까?
싯다르타는 자신의 고통과 후회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 깨달음 이전에 ‘책임지는 태도’가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나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본다.
나는 과거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지금은 좁은 관계만 유지하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있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름의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과거를 되새기며 마치 오답노트를 되새기듯,
복기하는 일이 더 많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 과정은 늘 괴롭다.
실수했던 얼굴들이 떠오르고, 그 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나
행동들이 계속 떠오른다.
그러면 속에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했던 주제에, 양심도 없이 혼자 잘났다고 그러고 있어?”
그들이 내게 소리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미 그 사람들은 이미 나를 잊고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하는 것 처럼.
그러면서 내가 느끼는 이런 괴로움은 단순한 자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최소한의 회개라 생각하며 쓸모없는 자기위안일 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애초에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시간을 돌릴 수 없는 데, 이 괴로움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과거를 어떻게 안고 가야하는걸까.
문득 깨닫는다.
이런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는 바로잡힌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라는 걸.
과거를 지워버릴 수 없다면, 그것을 품고 지금을 더 조심스럽게 살아내는 것밖에 없다.
싯다르타처럼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책임지는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태도가 나를 다시 바르게 깨어 있게 이끄는 힘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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