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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들

껍데기외 민낯 사이

by 에밀. 2025. 4. 3.

최근 스스로 쓴 글을 돌아보며 느낀 게 있다.
어쩐지 나를 향한 부정적인 문장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
읽는 사람도, 나 자신도 문득 걱정이 될 만큼.
혹시 나는 지금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나는 확신한다.

오히려 글을 쓰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회복되었고,
나는 내 삶을 이전보다 더 진하게 살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굳이 내 못난 점을 꺼내 놓을까?
그건 이제 꾸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럴듯했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나는 가면을 벗고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벗고도 버텨내고 싶다.



내가 과거에 가장 몰입했던 역할은 ‘교사’였다.
학원에서 나는 신뢰받는 선생님이었다.
수업 전 부모님과 통화하고, 학생 상태를 보고하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내 가치관과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학원은 교육이자 사업이었다.
시험 성적이 오르면 아이들을 홍보에 활용해야 했고,
경시대회에 적극 권유하고, 설득해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그런 설득에 소극적이었다.
아이들이 싫다고 하면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결국 원장님에게 문책을 받았고, 나는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이후 아이들을 설득했고 성과도 냈다. 인센티브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나답지 않은 역할을 억지로 수행하면,
몸과 마음이 따로 놀게 된다는 것.

나는 과거에도 자주 설득당하고, 설득하곤 했다.
우유부단했던 나는 쉽게 흔들렸고,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내며 이해시키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지쳤고,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다시는 나 아닌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 나는 민낯의 나를 꺼내놓고 있다.
처음엔 겁이 났다.
실망할까봐, 떠날까봐.
하지만 일부는 수용했고, 누군가는 오히려 격려해주었다.

그건 소중한 경험이었다.
가면을 벗어도 괜찮을 수 있구나 하는 경험.



내가 나를 모르고 살아가면,
삶은 그저 역할놀이가 된다.
그럴듯한 껍데기를 입고 움직이지만,
속은 공허하고 방향은 흐려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손윗사람, 직장 상사, 타인의 필요에 따라
내 삶이 조각난다.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나는 그런 글을 쓰겠다.
내 밑바닥을 마주하기 위해서.
그건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려는 게 아니다.
그 이하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내 밑바닥을 다지는 작업이다.

가식 없이 살고 싶다.
내가 나를 먼저 알아봐주고,
그런 나로 세상 앞에 서고 싶다.
민낯으로도 괜찮다고,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