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함께 보는 감정의 기술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인간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감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모든 것이 최악으로 무너져버렸다면, 오히려 마음은 단순해진다.
체념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다시 시작할 각오를 다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혹은 좋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어느쪽에도 확신할 수 없을 때는 앞에서는 마음 둘 곳을 찾기 어렵다.
특히 그 가능성이 내 노력과 무관할 수도 있다고 느껴질 때, 막막함은 더 커진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명확한 위협보다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 큰 불안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무엇이 올지 모른다’는 막연함은, 실체가 분명한 공포보다도 더 오랫동안 우리를 긴장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감정적 위협을 감지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뇌는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며, 신체를 지속적인 경계 상태에 두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는 피로감과 정서적 소진을 겪게 된다.
이런 반응은 특히 불확실성 불내성(Intolerance of Uncertainty)이 높은 사람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이 개념은 말 그대로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성향‘을 뜻하는데,
미래의 결과가 예측되지 않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 불확실성 자체를 위협으로 해석하며 과도한 걱정, 긴장, 회피. 행동을 보이게 된다.
단순한 ’걱정 많은 성격‘을 넘어, 모든 가능성을 통제하고 싶어지는 충동과 연결되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도 사소한 변수 하나에 크게 흔들리고, 끊임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명확한 실패보다 모호한 가능성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늘 최악의 상황부터 상상하려는 경향이 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이 불안으로 이어질 때,
차라리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고 가정해버리는 것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곤 한다.
주식이라면, 이 돈은 이미 다 잃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다.
연애는 이미 차였다고 여기고 시작하고,
직장에서는 내 평판이 최악이라고 전제한 채 움직인다.
물론 이런 태도는 의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함께 안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반쯤 포기한 듯한 기분,
어딘가 늘 맥이 빠져 있고, 체념한 듯한 분위기가 깔린다.
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장점도 있다.
기대치가 낮기에, 작은 긍정 하나도 내겐 놀라운 위로처럼 다가온다.
주식에서는 빨간불 하나만 켜져도 만족스럽고,
연애에서는 상대가 조금만 다정하게 웃어줘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이 생긴다.
직장에서의 작은 칭찬 한 마디도 오래도록 나를 붙잡아준다.
이러한 감정 구조는 단순한 성향이라기보다는,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는 실패나 상실을 미리 상상하고 대비함으로써,
실제 결과가 나쁠 경우 받게 될 정서적 충격을 줄이려는 일종의 감정 조절 방식이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반복될 경우,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식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패가,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경계하려 한다.
이 전략이 나를 마비시키는 회피로 작동하지 않도록,
오히려 긍정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드는 통로로 쓸 수 있도록.
작은 기쁨에 더 쉽게 반응하는 이 구조를
더 많이 행동하게 만들고, 더 자주 감사하게 만드는 자극으로 바꾸려 애쓴다.
그렇게 조절하고 있을 때, 이 전략은 내게 하나의 회복 탄력성이 되어준다.
그렇게 얻어진 작은 기쁨은, 단순한 감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
한 걸음 더 내딛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주식에서는 부분 익절을 하고, 새로운 종목으로 갈아타고,
연애에서는 상대가 흘린 말을 기억하며 나를 조금씩 가꿔나간다.
직장에서는 지시받지 않은 일도 먼저 찾아서 해보려 한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감각은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나를 지치지 않게 해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흐름을 ‘긍정 정서의 확대-구축 이론(Broaden-and-Build Theory)’으로 설명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행동의 폭을 넓히며,
장기적으로는 심리적·사회적 자원을 구축하도록 만든다.
기분이 좋을 때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고,
평소라면 망설였을 일을 시도해보는 용기도 생긴다.
감정은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행동들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상대가 내 노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고,
상사가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며,
새롭게 산 종목이 다시 파란불로 변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 선택은 외부의 결과가 아니라,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감각이 내 안에 있다.
이런 태도를 ‘내적 통제 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라고 부른다.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반응보다,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삶의 중심축으로 두는 사람은 더 높은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지닌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는 감각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가장 단단한 중심이 된다.
이런 태도는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처음엔 그저 불안해서, 두려워서 이렇게라도 살아보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내게 맞는 방식이 되었고,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졌다.
우리의 생각이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행동은 다시 사고를 강화하고, 점점 자동화된 패턴이 된다.
이 구조가 건강하게 작동하면 우리는 삶을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물론 완벽하게 이렇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나도 감정에 휩쓸릴 때가 있고, 때로는 그 불확실성 앞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는 태도를 매번 다시 해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나만의 방식이자, 나를 지탱해주는 정신적 습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내 확실한 습관 하나를 버팀목 삼으며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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