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일: 효율성과 절차 사이의 불편한 진실
오늘은 최근 독서모임을 통해 경험한 충격적인 모임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지난주 모임 후기에 언급했듯, 불쾌감을 유발하는 빌런 A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이 사람이 모임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방출 절차는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고 운영진에 상황을 공유했습니다. 부방장 B는 즉각적인 방출을 주장했고, 빌런을 직접 겪었던 저와 부방장 C는 첫 만남인 데다 경고도 없었으니 다음 모임에서 태도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방장 B가 빌런과 대화를 아직 해보지 않았으니 그가 빌런과 대화를 한 후 판단하자는 의견도 제시했습니다.
📚 무례한 첫 만남, 왜 기분 나쁠까? - 대화 방식이 만드는 불쾌한 순간들
✍️ 어색함과 불편함 사이, 독서 모임의 새로운 그림자🎭 평가의 덫: "OO 잘하게 생기셨네" - 단정적 평가가 초래하는 불쾌감 🎭 칭찬의 함정: "예쁘게 늙으셨네" - 모호한 칭찬이 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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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평일 모임, 독서 후 술자리 모임이 예정되었습니다. 앱을 통해 상황을 보니, 지난주 빌런 때문에 마음고생했던 D는 이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고, 이후 빌런이 술모임에 합류하기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참하여 자세한 상황은 몰랐지만, 모임을 하고 있을 시간에 방장에 의해 빌런이 방출되었다는 앱 알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D에게 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면서 빌런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궁금했습니다.
일요일이 되어 부방장B를 만나 평일 모임의 전말을 어느 정도 듣게 되었습니다. 빌런 합류에 부담을 느낀 D가 술모임 불참을 선언했고, 부방장 B는 불참 중인 방장과 상의하여 즉시 빌런을 방출시킨 것이었습니다. 상황을 알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의문이 밀려왔습니다. D가 불편한 일을 다시 겪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와 빌런이라지만 사전 경고 없이 방출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불편함과 함께 머리가 아팠습니다. 하지만 곧 감탄이 뒤따랐습니다. 모임과 운영진 입장에서 손실을 최소화한 최적의 결정으로 보였습니다. 빌런을 다시 겪으면 우려했던 것처럼 불쾌감이 반복될 수 있고, 경고 시 반발과 갈등, 심지어 앙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 방출은 이러한 문제를 원천 봉쇄하고 평화로운 모임 유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없죠.
충격적인 것은 부방장B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경험 많은 다른 모임들도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쳐낸다'라고 했고, 방장 역시 운영진 경험으로 단호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모임은 소수의 불편함 때문에 다수의 즐거움을 희생할 필요는 없어. 칼 같이 잘라내는 게 맞아."와 같은 말을 하는 부방장 B의 단호한 어조는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모임 운영 방식을 엿보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격언처럼, 문제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건강한 모임 유지의 핵심이라고 믿는 듯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고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에는 불편함이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이 불편함은 절차적 정의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부방장 C는 최소한의 대화라도 시도해 보고 방출을 결정하자는 의견이었으니까요.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간과된 절차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남깁니다. 빌런의 행동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과 개선의 기회는 박탈당했고, '빌런'으로 단정 지어 배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스며듭니다. 혹은, 이러한 일련의 불편함은 효율성을 쫓는 냉정함에 대한 거부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독서모임 '빌런 방출' 사건은 효율성과 절차적 정의라는 가치 충돌,
그리고 그 속에서 딜레마를 겪는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합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의사결정 방식은 때로는 빠르고 효과적인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지만,
소통과 공감, 절차적 정의와 같은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위험성 또한 공존할 수 있습니다.
더욱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사건은 제게 묘한 불안감을 남겼습니다. 오늘 '빌런'에게 적용된 효율성이라는 잣대가, 언젠가 다른 곳으로도, 어쩌면 나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유쾌하지 않은 상상 때문입니다. 절차적 정의가 무시되고 효율성이 우선시 되는 상황 속에서, 과연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더욱 성숙하고 신뢰 있는 모임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