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공격이 불쾌한 이유 -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난 글에서 ‘이해받는다는 감각’이 관계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했습니다. ‘나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감각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저는 고백이란 나름의 낭만이 있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백은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애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상대방이 알게끔 표현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용기를 내서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 스스로 확신이 없어 쉽게 고백하지 못했던 경험이 많았기에, 더욱 그렇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SNS에서 ‘고백공격’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내용을 듣다 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충분한 관계적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고백이 상대방에게 부담과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가 당황스러워할 수도 있겠다고만 생각했는데, 때로는 심각한 민폐가 될 수도 있고 심하면 최악의 경험이 될수도 있다는 점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이 글에서 다룰 내용
1. 고백공격이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이유
2. 심리학적으로 바라본 고백공격의 문제점
3. 고백공격은 남성에게는 불쾌하지 않을까?
4. 고백은 ‘만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백공격이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이유
얼마 전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고백공격이라는 주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제야 제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던 개념을 피부로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은 고백공격에 대해 단순히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해하고 질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통적으로 나왔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대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고백을 하는 거지?”
• “내가 만만한가?, 내가 우습나?”
처음에는 그냥 하나의 반응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도 여러 차례 듣다 보니 분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해받는다는 감각이 전제되지 않은 고백은 상대에게 불쾌함을 줄 수밖에 없는 ‘고백공격’이 되는 것이구나.’
단순한 ‘호감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와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감정의 투척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바라본 고백공격의 문제점
사람이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려면 ‘상호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나라는 존재를 상대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느낄 때 마음을 열고, 관계의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해받는다는 감각 없이 갑자기 날아온 고백은 상대방에게 다음과 같은 심리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1. ‘나는 도구인가?’ – 대상화의 불쾌함
고백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라서 고백한 걸까? 아니면 단순히 연애를 하고 싶어서 적당한 사람을 찾다가 나에게 한 걸까?”
고백이란 감정이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관계의 맥락 없이 이루어진다면 상대는 자신이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연애라는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2.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압박감
고백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은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관계적 맥락 없이 갑자기 이루어진 고백이라면, 거절했을 때의 후폭풍을 걱정해야 합니다.
• “거절하면 상대가 너무 상처받는 것 아닐까?”
• “혹시 저 사람이 기분 나빠서 나에게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까?”
• “주변 사람들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이러한 심리적 압박이 생기는 순간, 고백은 더 이상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이 되어버립니다.
3. 예측 불가능한 위험 요소
만약 관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고백을 받는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 사람이 나에게 왜 호감을 갖게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즉, 상대는 “나는 저 사람을 잘 모르는데,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라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거나 상대가 과하게 몰입하면, ‘저 사람이 내 정보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나를 스토킹한 것은 아닐까?’와 같은 공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고백공격은 남성에게는 불쾌하지 않을까?
고백공격에 대해 이야기하면, 종종 나오는 반론이 있습니다.
“왜 여성들만 불쾌해한다고 단정 짓는 거지? 남성도 고백공격을 불쾌하게 여길 수 있지 않나?”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백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쾌해하는 남성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고백을 거절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자체를 끔찍하게 여기거나, 압박감을 느끼거나, 위협을 느꼈다는 반응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차이는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남성은 ‘연애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왔고, 이는 그들이 고백받는 상황을 위협적이라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남성이 고백공격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만약 관계 맥락 없이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았다면?
• 상대가 거절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고백했다면?
• ‘내가 왜 선택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남성들도 역시 불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지 그런 경험이 사회적으로 여성보다 훨씬 적었을 뿐입니다.
고백은 ‘만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백은 상대방을 향한 용기 있는 감정 표현입니다. 하지만 용기와 만용(莽勇)은 다릅니다. 이해의 과정 없이 오로지 자기 감정만 앞세운 고백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 됩니다.
상대와 충분한 서사를 쌓지 않은 상태에서 던지는 고백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고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내가 좋아하니까 고백해야지’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이 고백이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갈까?’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