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하나의 태도를 보고 나를 탐구해보기
나는 어떤 것을 싫어하는 사람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떠올릴 때, 당연히 비인도적인 행위인 구타나 괴롭힘, 가혹행위 같은 것들은 제외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외에 어떤 것에서 가장 큰 불편함을 느낄까요?
곰곰이 떠올려 보니, 가장 강하게 싫었던 경험은 ‘자고 싶은데 못 자는 것’이었습니다. 피곤한데도 외부적인 방해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깨어나야 하는 순간들. 이때 저는 유독 짜증이 강하게 납니다. 그다음으로는 배고픈데 즉각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할 때. 마찬가지로 상당한 불쾌감을 느낍니다. 결국,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그 결핍이 저에게 강한 불만족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먹고 자는 문제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것이 방해받는 상황에서도 큰 불쾌감을 느낀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에 몰두하고 싶은데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거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감정이 격해집니다. 이러한 특징을 떠올리면서, 저는 본능적인 차원의 욕구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에서도 좌절을 참기 어려워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성향은 단순히 감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행동하는 방식에서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 때 누군가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여러 가지로 수용해주고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내가 정말로 수용과 배려를 바랄 때 너는 너 하고 싶은 것을 끝내 하더라.”
이 말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깊이 고민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니, 이 말 속에는 저에 대한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스스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혹시 그 배려가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보통 친절과 배려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되갚아주려 합니다. 저는 그런 심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아주 오랫동안 그것을 활용해 온 것은 아닐까요? 겉으로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듯하지만, 정작 상대방이 진짜로 나의 배려를 필요로 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걸 끝내 선택한다는 점에서, 저는 어쩌면 진짜 배려를 한 것이 아니라, 배려하는 ‘척’을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는 단순히 타인을 배려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짜 선한 행동’과 ‘그렇게 보이려는 행동’의 차이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부터 ‘정말로 착한 것’과 ‘완벽하게 체화된 착한 척’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결코 착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는 분명 이기적이고, 악한 감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생활 속에서, 저는 착한 행동을 반복했고, 그 덕분에 주변으로부터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아 왔습니다.
이 고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령 처음에는 착한 척이었더라도, 그것이 완벽하게 체화되어 계속될 수 있다면, 그건 결국 진짜 착한 거 아닌가?”
저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고, 그렇게 납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제 생각이 다시 정리되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체화되고 꾸준히 지속될 수 있다고 해도, 착한 척은 정말 착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저는 그 차이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착한 행동을 해야 할까? 만약 그 행동의 동기가 이기적이라면,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닌 걸까?
저는 아직 그 답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저는 이제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만, 착한 행동이 내면의 본질적 선함에서 비롯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그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까? 혹은 행동이 본성을 바꿀 수도 있을까? 라는 생각이 뒤를 잇습니다.
이 고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자신을 탐구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이든, 나는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을 의심하고 또 질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