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생각들

잘 지냈어?라는 인사가 불편할 때

에밀. 2025. 3. 26. 17:30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가장 흔히 건네게 되는 인사다.
나도 평생 잘 써왔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큰 불편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 인사가 조금 곤혹스럽게 느껴진다.


나를 찾아주시는 한 선배님이 계신다.
내가 큰 실수를 하고 근신 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떤 책임감 때문인지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안부를 물어주신다.
그런 연락을 받을 때면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정말 마음이 없는 사이에는 1년에 한 번 연락하기도 어려운 법이니까.
그런데 그 선배님이 “잘 지내고 있지?”라고 물으면, 그 순간만큼은 참 난감하다.


사실 큰 의미 없는 인사일 테니,
나도 그냥 “네, 잘 지냈습니다.”라고 답해도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자숙 중인 입장에서 잘 지내는 것이 마땅한가?
어딘가 괜히 마음이 걸린다.


그렇다고 “아뇨, 잘 못 지냈어요.”라고 말하자니,
괜히 뻗대는 것 같고,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로 보일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건 안부 인사에 어울리는 반응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괜히 대화가 길어지면 어쩌나 하는 부담감이 밀려온다.
“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올 걸 아니까.
그래서 자숙 중인 내 마음이나,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구태여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뭐… 그냥저냥요.” 같은 변변찮은 말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하는 건 의미 없다는 걸 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어제, 유튜브에서 드로우앤드류 님과 장재열 작가님이 함께한 영상을 봤다.
영상 제목은 “잘 지내?라고 묻지 마세요.”
20대, 30대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진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장재열 작가님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잘 지내?”라는 인사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직접 인터뷰한 고립 경험자 100명 전원이,
“그런 연락을 받으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읽씹하게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들의 말이 마음에 닿았다.
비록 나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내 상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묻는 게 좋을까?
작가님은 “어떻게 지내?”가 차선책이고,
가장 좋은 건 “그냥, 네 생각나서 연락했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느낀다.


말하고 싶은 게 많은 상태라면
“어떻게 지내?”가 더 좋다.
그 질문엔 내 마음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얹을 수 있으니까.
반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그저 “생각나서 연락했어.”라는 말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나도 이런 인사를 참 많이도 했었다.
독서 모임에서 몇 주 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무심코 이렇게 외쳤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그 인사에 어색하게 웃기만 하던 친구의 마음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제는 다른 인사말을 건넬 것 같다.

“어떻게 지냈어? 궁금하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