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바뀌는가
변화는 계산 끝에 온다.
인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설득해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계발이라는 건 결국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설득 작업’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게 ‘나에게 더 좋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는 행동이 슬쩍 바뀌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확신’에 도달하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머릿속으로는 이게 맞다는 걸 알아도, 마음속 계산기는 아직 “아직은 아닐지도 몰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가 대표적인 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안 하는 건,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걸 함으로써 얻게 되는 변화의 기쁨’보다 ‘지금 당장 뭔가를 참아야 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더 크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생각보다 정교한 계산이 일어난다.
– 다이어트를 하고 나면 거울을 볼 때마다 뿌듯함에 기분이 좋을 수 있다.
–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쳐져 더 멋진 이성을 만날 수도 있다.
– 나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더해진다.
하지만
– 아침에 먹고 싶은 걸 참아야 하고
–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해야 하고
– 친구들과의 외식 자리에서 눈치를 보며 메뉴를 골라야 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고
– 이게 몇 주, 몇 달 지속되어야 겨우 반응이 온다는 것도 안다
이런 항목들이 쭉 나열된 채, 우리 내면의 계산기는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삐빅! ‘불가’
“음… 그냥 나는 이대로 살래. 지금도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변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반대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 지금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불만족이 아주 큰 사람
– 운동이나 식단관리가 그리 괴롭지 않은 사람
– 변화한 이후의 자신에 대해 강한 기대와 상상을 품은 사람
변화와 현상유지의 계산에서, 결국 변화에 무게추가 쏠린 사람이다.
이건 아주 사소한 습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설거지 습관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나는 원래 설거지를 미루는 편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싱크대에 그릇을 쌓아두고는 ‘나중에 한꺼번에 하지 뭐’ 하고 넘겼다.
설겆이의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애벌로 한 번 헹구고, 세제 묻혀 닦고, 물로 헹구고, 물기 닦아 정리하는 그 순서가 너무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쌓였다가 한 번에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물론 주변에서는 “그때그때 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말 그대로 ‘말’일 뿐, 나의 계산식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끼니도 집에서 해결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럽게 설거지 양도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쌓아둔 그릇 틈 사이에서 벌레를 보게 됐다.
작은 날벌레 하나였지만, 내 머릿속 계산기에는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 설거지를 미루면 → 위생 문제 + 벌레 가능성 + 주방에 대한 스트레스 증가
왜 이렇게 귀찮을까? 뭘 줄이면 덜 귀찮을까?
고민 끝에 찾은 건 ‘뜨거운 물’이었다.
가스비를 아낀다고 늘 찬물로 설겆이를 했지만, ‘뜨거운 물로 하면 기름때도 빨리 지워지고 물기도 더 빨리 말라 시간도 줄어든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 바로 실험해봤고, 효과는 확실했다.
이것 역시 계산식에 반영됐다.
– 지금 바로 설거지 → 10분 투자 + 기분 좋은 청결감
– 미루면 → 30분+ 대형 귀찮음 + 혐오스러운 벌레, 냄새
그 이후부터 나는 식사 후 거의 자동적으로 설거지를 하게 됐다.
누군가는 “결심의 힘이네”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설득된 것이다.
내 머릿속 계산식이 손해보다 이익 쪽으로 기울었고, 나는 그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꾸고 싶을 때면, 생각을 깊게 해본다.
이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이것뿐일까? 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실천의 기회비용이 정말 이렇게 큰가?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계산의 항목들을 새롭게 짜본다.
그래서 끝내 ‘이익’쪽에 불이 켜지도록 만든다.
그러면, 나는 바뀐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계산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감정의 비용과 얻는 안정감, 위로, 즐거움.
상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 예민해지는 순간들조차
사실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정밀한 심리적 연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늘 스스로를 설득한 이후에야 움직인다.
그리고 그 설득은 언제나, 우리 안의 조용한 계산기로부터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