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생각들

글은 결국 내가 내게 보내는 위로다.

에밀. 2025. 4. 19. 07:00

그런 날이 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도무지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날.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처럼.
그렇다면 반대의 날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쓸 말들이 머리 속에 퐁퐁 떠오르는 날들.
그런 날들은 어떤 날들이었지?


많은 경우 내 안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할 때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긍정적인 감정이 마음 속에 가득할 때도 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감정을 글로 풀어내려 하면,
뻔한 표현들이 나오며 진부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쓰지 않게 된다.
조금 더 진득한 감정이 담기고, 내 스스로도 뽑아내야겠다 싶은 건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이 글감이 될 때이다.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그런 사실 조차도 나를 아프게 찔렀던 날이 있었다.
문득 스스로가 이렇게 느껴졌다.
‘나는 불만이 정말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 그걸 말로는 차마 못하니까, 결국 글로 풀어내는 건가?’
‘글쓰기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를 겨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내가 너무 찌질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만 싶어졌다.


그때, 그것마저도 긍정해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감정은 오히려 솔직하고 중요한 것이며,
글을 쓰다 보면 내면 깊숙한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그리고 그런 감정들에 대해 걱정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려는 것 자체가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증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물어준다.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말라고.


그 말들에 마음이 녹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말들이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도, 결국 듣기좋은 말을 찾기 위해서였던 건 아닐까.
또다시 자기 비판의 목소리가 고개를 치든다.
‘이것마저도 위선 아니야?’


하지만,
그게 나쁜가?


아니다.
내가 그것에 과도하게 의지만 하지 않는다면,
듣기 좋은 말만 옳다 여기고 다른 말은 배제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를 지탱해주는 따뜻한 기둥이 될 수 있다.
안그래도 이 세상은 먹고살기에도 각박한데,
그런 존재 하나쯤 곁에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고, 이유 없이 잘해주고 싶은 사람.
무언가 특별한 보상이 없어도, 그 사람이 웃으면 기쁘고, 도움이 되면 뿌듯한 마음.
그런 마음은 계산해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어떤 순간에는 내 안에서 저절로 샘솟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라고 상대가 나에게 기대지만은 않았다.
고마워하면서도 스스로를 점검하는 태도를 놓지 않았고,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을 얻어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더 있는 힘껏 지지해주고 싶어진다.
스스로를 더 단단히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내게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좋고,
내가 그런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다.
그보다 더 깊이 바라보면, 가장 먼저는
내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부정적인 감정마저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
그 감정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사람.


결국 나를 가장 먼저 다독이는 말은
밖에서 들려오는 위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에게로 향한 말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런 말을 찾아
다시, 천천히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