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없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 감정을 다룬다는 것
연애를 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질투’다.
질투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불필요한 상상을 하며 상대를 의심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좀먹는다. 그렇게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런 다짐을 꼭 하곤 했다.
처음부터 질투를 만들지 않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누구나 질투심을 유발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굳이 이성 친구 이야기를 반복해서 꺼내지 않거나,
연인의 불안을 자극할 만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
이런 ‘사전 예방’은 연인 사이의 기본 예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질투를 유발할 일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평화롭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아무리 조심하고 예방해도, 질투는 어느 날 불쑥 고개를 든다.
그 감정이 나를 삼켜버릴 때, 결국 쌓인 마음을 꺼내어 말하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말한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잖아.”
맞다. 그 말이 맞는 순간이 있다.
질투는 꼭 상대의 잘못으로만 생기지 않는다.
나의 불안, 나의 열등감, 나의 상처가 질투의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무리 상대가 조심하고 배려해도 내 안에서는 시끄러운 감정이 요동친다.
스스로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감당할 힘이 없으면 견딜 수 없이 괴롭다.
그래서 결국엔,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말아달라고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도 참 어리석은 요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도로 감정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한다.
관계에서 더 중요한 건, 질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질투가 생겼을 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상대방이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질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이다.
질투는 본능처럼 찾아오는 감정이고, 그 감정을 억누르기만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억지로 감추려 할수록 더 왜곡된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질투를 느낀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인식하고,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질투를 솔직하게 표현하되, 상대를 조종하거나 몰아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내 감정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좀 질투났어. 근데 내가 감정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어.”
그 말 한마디가, 관계를 회복시키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질투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과,
질투를 느끼더라도 스스로 다스리는 힘.
이 두 가지는 결국 양날개처럼 함께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하나를 먼저 연습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가 더 우선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관계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 흔들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질투 없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위에서 말했듯, 감정을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 누군가를 만난 이야기조차 하지 말아달라고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굳이 그런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스스로의 감정을 전보다는 더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감정을 다룬다는 건 결국,
그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반응하는지를 바꾸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이나마 이해해가는 듯하다.
질투를 피하고 싶었던 나는,
그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마음이 시끄러워질 때면,
올라오는 감정들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