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후기: 상담사는 왜 좋은 청자가 되어줄 수 없나?
상담실 문을 나서며,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간 건, 단순히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오래 쌓여 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한 번쯤은 마음껏 쏟아내고 싶었다.
오래 붙잡혀 있던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그 끝에서 나도 미처 몰랐던 나를 마주하고 싶었다.
언제까지고 자책하거나 후회만 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또 옛날 경험이 주는 불쾌감으로부터 벗어나야지 다시 직장을 구하더라도
적응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마음으로 나는 상담실 문을 열게 되었다.
인자한 표정의 상담사님께 인사를 하며,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겠다는 작은 기대가 스쳤다.
그러나 상담실을 나설 때, 내 입가에는 묘한 아쉬움이 맴돌았다.
나는 충분히 말할 수 있었던 걸까
상담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어떤 부분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은지 먼저 간략하게 작성하고,
세네 번의 문답이 오간 뒤, 상담사는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며 종이를 꺼냈다.
사람의 무의식이 그림을 통해 드러난다며,
HTP(집, 나무, 사람)와 어항가족화를 그려보자고 했다.
그림을 보며 상담사는 몇 가지 키워드를 빠르게 추려냈고,
곧장 문제의 본질을 진단하듯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상담사는 이미 결론에 도착해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이 상담사는 나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내 문제의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는 내게 공감한다는 듯 몇 마디를 건넸지만, 그 말들은 마음 깊숙이 와닿지 않았다.
“생각이 너무 많고 괴로우시죠. 그것을 말로 표현을 해야 하는데.”
“가장 편안하고 휴식을 취해야 할 집인데 그러지 못하셨네요.”
평소라면 위로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미리 준비된 대본을 따라가듯
차례로 읊조리는 대사처럼 들렸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적절한 반응을 유도하고
내가 그 결론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몰아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내 이야기는 어느새 상담사의 이론을 뒷받침할 ‘하나의 사례’로 소비되고 있었다.
나는 점점 입을 닫았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하지 못한 말들이 쌓이는군.’
표현하지 못해 쌓인 감정이 나를 병들게 한다는 진단이 막 내려진 자리에서
정작 그 심리를 다뤄줄 사람이 여느 사람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아이러니.
나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무엇을 바랐던 걸까
가장 먼저 바랐던 것은,
내가 충분히,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들어주는 것이었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듣지도 않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일상 속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온전히 털어놓을 수도 없다.
조금씩, 일부만 꺼내어 대화의 소재로 삼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의 사건과 그에 따른 감정을 풀어내는 일은
말하는 나도, 듣는 상대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하지만 상담사에게는 그것이 직업이고 일이니, 가능하다고 여겼다.
적어도 상담실에서만큼은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말을 다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말이 길어지더라도, 말이 꼬이고, 논리가 어긋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더라도, 그것을 상담사가 직업적 역량 안에서 담담하게 받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보지 못하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길 바랐다.
내 안에 어떤 왜곡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어떤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지,
제3자의 시선에서 짚어주기를 기대했다.
내가 믿었던 것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사람이라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단과 조언을,
더 가볍게,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담사는 조급했다.
이야기를 꺼낸 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았건만,
상담사는 이미 해답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인자한 웃음과 함께.
유감스럽게도 그 해답은 내게 적절하지 않았다.
상담사도 결국 사람이다
상담실을 나오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상담사도 결국 사람이며, 조직에 속한 개인이라는 사실이다.
상담사 역시 제한된 시간 안에 내담자가 무언가 성과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있었다.
그러니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기보다는,
몇 가지 초점을 빠르게 포착해, 나름의 ‘건전한 결론’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익히고 훈련받은 이론과 도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상담사도 나처럼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다.
상담사라 해서 완벽한 청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내담자의 욕구를 다 수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상담사이니까 가능하겠지’ 했던 것도,
나 혼자 멋대로 가졌던 합의 없이 이루어진 기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담자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다음 상담에서 이렇게 말해봐야겠다.
“저는 이번 상담에서는 충분히 제 이야기를 먼저 다 하고 싶어요. 조언이나 방향은 나중에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라는 바를 먼저 말하고, 서로 조율해 간다면 더 좋은 상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담은 상담사가 이끌어가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내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다시 상담실을 나서는 그날,
그때는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오고 싶다.
그렇게 한 번 더, 내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