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말이 거슬렸을까?
누군가의 ‘일희일비’가 내 마음을 흔드는 순간
며칠전 아침, 아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별다른 용건은 아니었고,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자연스럽게 주식 얘기로 넘어갔다.
자기가 투자하고 있는 기업의 주가가 장 시작과 함께 급등했다며 신이 나 보였다.
“ㅇㅇㅇ 급등 미쳤나봐!”
나는 그 말에 가볍게 축하를 건넸다.
기분 좋은 일은 함께 나눠도 부담이 없으니까.
그런데 불과 몇 분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아… 이거봐. 역시 또 내려간다...”
문자를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짧은 한 줄에 담긴 탄식이 너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큰 하락도 아니었고, 오히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승해
아까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 순간의 반응은, 과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괜히 반응했다가 감정이 더 요동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한 줄이, 괜히 거슬렸다.
‘꼴불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잠시 뒤, 동생이 무례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런 감정은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 짧은 감정표현 하나에 이렇게 불쾌해졌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예전부터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미성숙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정확한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내 삶 곳곳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고진감래”라는 말,
그리고 세옹지마 이야기가 마음 깊이 남았고,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들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렇게 잡아왔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이런 사고방식은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으려 애써왔다.
삶의 굴곡이 결국엔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런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지금’보다는 ‘전체’를 보려 했다.
이런 태도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내가 스스로를 버텨온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크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삶을 견디고,
때때로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의 그런 즉각적인 감정 표현은
내게 ‘갈팡질팡’하는 모습처럼 비쳤고,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음에도 어쩐지 철없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평소 단타를 하거나 충동적으로 매매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기업을 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사람이다.
그걸 알기에 더 어색하고 불편했다.
왜 저런 말을 할까.
왜 잠깐을 참지 못하고 탄식을 뱉을까.
생각해보면,
그는 실제로 뭘 바꾸려는 게 아니었다.
단지 불안한 감정을 해소하려고,
누군가에게 말을 던진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게 나였던 거고.
나는 그런 순간이 싫다.
마치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떤 고민을 하는 척하지만, 사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단지 그 감정의 찌꺼기를 누군가에게 쏟아내고 싶은 마음.
그런 말이 내가 들은 말이 그런 것처럼 느껴졌기에 더 불쾌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타인이나 상황에 휘둘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순간에, 내 안의 자기 통제력이 무너지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상으로 감정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옆에서 누가 일희일비하면,
어느새 나도 그 감정에 물들어 있다.
그게 싫다.
무너지기 전에 피하는 게 낫다는 걸 알기에
아예 대화를 끊어버렸던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분 좋은 이야기는 괜찮다.
주가가 올랐다고 자랑하는 말은 차라리 듣기 편하다.
그럴 땐 가볍게 축하해주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탄식이나 불안 섞인 말은 다르다.
그건 내게 아무런 이득도 없이,
내 마음만 뒤흔든다.
이득을 따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고 싶은 본능 같은 것이다.
돌아보면, 그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한순간의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다.
나는 그 표현이 거슬렸고,
나를 방해한다고 느꼈다.
결국 문제는 그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한 신념과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구조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문자가 와도 바로 답하지 않고,
‘이건 동생의 감정, 나는 정보를 받아들일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는 것.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나서 반응하는 것.
혹은, 감정이 아닌 정보에 집중하는 대화를 유도하는 것.
“이번 변동, 기업 실적 관련된 이슈야? 아니면 수급 노이즈인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타이밍이 괜찮을 때,
“나는 실시간 감정 표현은 좀 힘들더라.
그런 얘긴 하루 끝나고 총평처럼 나누는 게 내겐 더 맞아.”
라고 부드럽게 내 입장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쾌했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이라는 걸 솔직하게 말하면,
그도 이해하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의 한 마디 말에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을지를
조금씩 배워가고 싶다.
그게 ‘성숙’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아도,
내 나름의 성장일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