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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들

글은 나를, 독자는 글을 움직인다.

by 에밀. 2025. 4. 6.
혼자였던 글에, 누군가 말을 걸었다.


글을 쓰게 되었지만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이 잘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한 편씩 완성을 해서 올리려 했는데, 하루는 한 줄을 쓰는 것 조차 버거웠다.
매일 내 머리를 쥐어짜서 도망가는 글감을 붙잡고 한 문장씩 기워나가는 듯 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한 날이면 ‘내가 이러려고 직장을 그만 두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고는 평균 이틀에서 사흘에 한 편 꼴로 쓰는 것이 최선이었다.



왜 글을 쓰려고 했나? 왜 꼭 매일 한 편은 써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나 자신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는 바가 생각보다는 없다고 느꼈던게 시작이었다.
그러다보니 선택의 순간에 늘 우유부단했고,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았다.
스스로 방황하는 것을 넘어, 인생이 다른 사람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유부단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 대로 꿎꿎이 밀고 나가는 사람이 어떤지 보았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해 분명했다.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치열하지 않고 뚜렷한 목표 없이 흐르는대로 살았다.
정확하게는 그런 것이 없다기보다는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맞겠다.
제대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그저 머리만 굴리는 것 보다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한 두번의 생각, 글로는 충분하지 않고 수차례 반복하며 스스로를 깊게 파고 들어봐야
후회하지 않을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일생에 걸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 시기에 무조건 습관으로 만들어두고 싶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아무도 없는 트랙 위에서 혼자만의 경주를 이어가던 어느 날,
그 길에 독자가 나타났다.

독자는 마치 혼자 걷는 줄 알았던 길 위의 동행같다
나와 글을 같이 쓰는 것도 아니고 감독하고 압박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나에게 분명한 영향을 준다.

사실 처음에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계속해서 글을 쓰자!‘라고 다짐했었다.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내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얻어간다는 사실이 내게 굉장히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그 땐 글도 별로 없을 때라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동기부여가 되어서 매일 한 편 씩은 글을 쓰게 되었다.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한 편을 쓰고 남은 시간이 많은 까닭이다.
남은 시간에 책이라도 더 보고 다른 글감을 생각하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의 글로 나는 ‘오늘 할 일을 다 끝냈다!’는 합리화에 스스로 안주했고,
그대로 퍼져버렸다.
휴식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런 시간이 너무 많고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비하는 시간을 줄여 글을 더 많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생각대로 실천이 잘 되지 않았다.
오후에 집중에서 한 편을 쓰고 저녁밥을 챙겨먹고 나면,
다시 자리에 앉기도 어렵고 앉는다 해도 도대체 머리가 굴러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또 다른 독자가 생겼다.
글에 담긴 내 생각을 즐겁게 봐주고 하루만에 블로그 글을 정주행 했다며,
빨리 더 많이 써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서야, ‘이제는 글을 더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마음 깊이 들어왔다.

이전에는 한 편을 다 쓰고 나면 진이 빠져 남은 하루를 그냥 보냈더라면,
이제는 한 편을 다 쓰고 나서도 다른 글을 더 써보려 자리에 앉아있는다.
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음에 쓸 글감을 찾아 서론을 잡아둔다.
분량에 큰 차이가 나지는 않더라도 전보다 더 글쓰는 시간에 마음이 간다.
나만의 목표에 독자의 기대라는 무게가 얹어져 마음에 추가 기우는걸까.
그 무게는 가볍지 않지만 가슴을 뛰게 한다.



또한 독자는 나로 겸손하게 만들고 안주하지 않게 한다.
오후 시간을 온전히 쏟아 글을 쓰고 저녁 시간까지 들여서 수 차례 수정하고 추가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나만의 소중한 창조물이 된다.
너무 소중하게 여기다 못해 많은 시간과 품을 들였으니
완벽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 그 글은 완벽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글은 정체될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 글을 썼더라도 그것으로 독자와 소통까지 하고자 한다면,
글은 더 발전할 여지를 얻는다.
피드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글이 짧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막 집중하려 하면 글이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구조를 통해 하고자 하는 모든 말을 글에 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내가 쓰고자 하는 만큼만 썼다.
이것도 틀린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
하지만 내 글쓰기가 점차 나아지고 익숙해지면서
더 나아질 부분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
그 때 다시 내가 들었던 피드백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피드백을 마음에 담아, 실제 글에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
가장 먼저는 나를 위해, 그리고 이 글을 바라봐주는 이들을 위해.
언젠가 내 글을 기다려주는 이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 때의 내게 필요한 힘과 동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내게 힘을 주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나도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한 문장을 꺼내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