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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각들

반복되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마음들

by 에밀. 2025. 4. 5.

대화를 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이야기를 이 사람으로부터 몇 번째 듣는 것인가.
내가 이 사람에게 동일한 이야기를 몇 번째 하는 것인가.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지치는 느낌이 있다.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상대방도 동일한 것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한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쓴다.
이야기를 했었음에도 다시 이야기를 해야할 일이 생긴다면,
“저번에 얘기 했던 것이긴 한데…“
라며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지된 상태임을 알린다.



내가 왜 이렇게 반복되는 대화에 대해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잠깐 과거를 돌아본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친구 아버지가 pc방 사장님이었던 덕에, 친구와 함께 놀러가서 새벽내 게임한 특별한 경험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컸던 탓일까.
친구와 버스를 타고 길을 갈 때, 그 지점만 지나면 나는 그 얘길 꺼냈다.
어느날 친구가 듣기 지쳤는지, “너는 맨날 그 얘기만 하냐.” 한 마디 했고,
그런 면박을 받은 것이 처음인데다 어린 마음에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늘 내가 한 얘길 또 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된 것 같다.

“왜 우리는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가.”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앞의 어린 시절 이후 자라면서는 억울한 일이 있고 그 마음을 공감받고 싶은 마음에 했던 이야기를 거듭해서 말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곧 들으며 경향을 찾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견디고 이겨냈는지를 토로할 때,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그 시간의 무게를 함께 건네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을 홀로 정리하기가 힘에 부친 걸 수도 있겠다.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이 저도 모르게 입을 통해 이야기로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상대방의 인정과 공감을 안고 돌아와 점차 내 안에서 소화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겨움이 될 수도 있는 듣는 일이 참 가치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는 스스로를 마냥 방치할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고 한 들, 한 곡만 반복해서 들으면 점차 답답하고 지겨워진다.
변주 없는 대화 속에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빛을 발할 수 없게되고, 권태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생각을 마음에 담는다.
글을 쓰면서 그 생각을 정리하고 내 것으로 삼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조용히 되짚어본다.
혹시나 내가 아직 소화하지 못한 감정에 같은 얘길 꺼내진 않았는지.
상대방에게 피로감을 주지는 않았는지.



한편으론, 우리는 반복을 통해 안정을 느끼고 애정을 찾기도 한다.
매번 들어야 할 어머니의 잔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문득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상 그것은 잔소리가 아닌 애정의 확인이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살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결국 반복의 의미는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때로는 지겨움이 되고, 떄로는 안심이 되며, 때로는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담긴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해가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