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생각들

소리를 찾던 마음이 고요를 배우다

by 에밀. 2025. 4. 15.

혼자인 시간을 버티는 방법을 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책을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해보려 애썼지만,
그 시간 동안 어디선가 자꾸만 스며드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느낌.
그래서 그 시절, 내가 가장 자주 하던 건 ‘전화’였다.
친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다 보면,
텅 빈 마음이 웃음으로 조금씩 채워지곤 했다.
상대의 목소리,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내 기분이 덜컥 살아나는 순간도 많았다.


물론, 처음부터 통화를 즐겼던 것은 아니다.
사실 통화라는 게 나에게 익숙한 수단은 아니었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학생 상담을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는 일들이
전화라는 형태로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통화는 내게 가장 손쉬운 교류의 수단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적의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인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그 고요함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고,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무심코 유튜브를 켜놓는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의 목소리, 심지어는 아무 것도 아닌 말소리가
내 마음 한 자리를 채워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말소리들이 없던 시절엔,
거의 항상 누군가를 붙잡고 통화를 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정적을 견디지 못했을까?


네가 그랬지,
고요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니었냐고
네 말이 맞다.
나는 내 생각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 맞는 것 같다.
내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무겁게 몰려올 때가 있었고,
그 모든 걸 혼자 담아내기엔 너무 갑갑해서,
마치 어디라도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던 거고,
그 말을 받아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통화를 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글은 당장의 상대가 없지만,
언젠가 상대가 될 사람들에게 닿는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마음을 꺼내놓는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글쓰기는
그 시절 통화가 해주던 해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생각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가득 채워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산만한 상태가 되곤 했다.
그 어수선함을 견디지 못해, 어떻게든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랐고,
그게 곧 통화로 이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고, 해소해가는 과정을 통해
이전과 같은 불안함을 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있을 때에도
꼭 유튜브를 켜놓지 않아도 괜찮다.
조용히 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집안일을 하며
조금씩 움직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가 꼭 사람의 소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가끔은, 그 고요함 속에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나를 부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꼭 붙잡아 글로 남긴다.
지금은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내 안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